라라랜드(la la land, 2016)
라라랜드 (스포일러 포함)
1. 좋아하거나 기대감이 충만했던 감독들이 어느덧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혹은 제도권의 시스템에 굴복하여, 혹은 상상력 고갈로, 혹은 기타 등등의 이유로 더 이상 전작의 깊이나 영민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을 고하듯 슬픈 일이다.
마티유 카소비츠가 '증오'에 버금가는 영화를 못들고 나올 때, 대니보일이 '트레인스포팅' 이후 자기만의 색깔을 완전히 희석시킬 때,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레퀴엠' 이상의 작품들을 만들긴 커녕 점점 퇴보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어질 때, 라스폰트리에가 더 이상 '킹덤' 같은 것은 못만들겠지 하고 인정하게 될 때 등 수없이 많은 '이별'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꽤 많이 흘러서 다시금 영민하거나 깊이감 있는 작품들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미 가버린 사랑을 그만큼 되찾긴 쉽지 않다. 여기에 다미엔 차젤레 이름도 추가해야할 것 같다.
위플래시에서 느낀 그 밀도감 있는 연출력은 어느새 오마쥬 아닌 오마쥬 화면들로 채워졌고, 음악 자체가 하나의 구성요소 였던 전작과 달리 음악은 어느새 캐릭터들을 보완하는 역할로 채워짐을 보면서 다미엔 차젤레와 나는 여기까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 오마쥬와 클리세의 간극
대놓고 클래시컬한 무비들(1930~50년대) 을 오마쥬하는 이 영화는 의상, 공간의 구성, 색감 등을 그 시대의 감성들로 재연하고자 하였는데, 때때로 이 장면은' 과잉이다' 싶을 정도의 클리세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나 끊임없이 변주되는 주제곡 'city of stars' 역시 뭐 저렇게까지 감정의 과잉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게 너무 캐릭터들의 감정 상태에 따른 심리변화로 표현하고자 한 게 거슬렸다. 이 역시 전작 위플래시에서는 음악, 사운드 자체로의 연출이 돋보였다면, 여기서는 음악을 그저 캐릭터들을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활용된 것이 안타까웠다. 이런 식의 연출은 전혀 새롭지도 않고 잘 짜여진 틀(미술감독의 색감 선택 능력,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에서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물론, 훌륭한 미술감독을 고르고 배우들의 연기를 이렇게 이끌어 내는 것도 연출력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그 밀도있는 연출력을 찾을 수 없는게 못내 아쉽긴 하다. 그래서 더욱 클리세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라라랜드'의 여운보다는 영화에서 나왔던 '이유없는 반항'이라든지, 비슷한 테마(주제곡의 다양한 변주와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슷한 장면이 겹쳐보였던 영화인 '카사블랑카', 아주 멋들어지게 1950년대의 미국사회를 그려냈던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 그 외 번스타인의 뮤지컬 넘버들이 오히려 더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3. 헐리우드의 장소성
꿈을 찾아 누구나 문을 두드리는 곳. 미아(엠마 스톤 역)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역)에게 유니버설 제작 스튜디오 투어를 시켜주면서 둘 다 꿈에 부풀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통해 헐리웃이라는 공간의 판타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영화는 남, 녀 주인공이 각자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그야말로 환타지한 스토리이다. 이런 꿈을 이루는 것이 '헐리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실을 맛보게 되는데 물론 좌절과 실망이 뒤범벅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결국에는 꿈을 향해 나아갈수록 꿈이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상투적인 감정 전달을 '헐리웃'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헐리우드의 밤은 너무나 아름답고, 언제나 멋진 파티가 펼쳐지며 누구나 동경의 대상을 마주보면서 꿈을 꿀 수 있는,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판타지한 공간'으로 전이된다. 이런 꿈을 찾아 헐리우드에 입성하지만 생각보다 추악한 이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거리감을 두고 지내다가 결국 자신도 그런 위선적인 생활에 길들여져 만족스럽게 살아간다는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 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놓이게 된다. 헐리웃에서 꿈을 찾아 혹은 무언가를 찾아 발을 들여놓고 그 속에서 사랑을 싹띄우다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 두 영화의 동일한 지점이지만, '라라랜드'는 끝까지 '동화' 속의 헐리웃을 끌고 나가고, '까페 소사이어티'는 보다 현실과 욕망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라라랜드'에서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재즈바안에서 잠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헤어지지만(이 부분 역시 '카사블랑카'를 떠오르게 하는 지점이지만), '까페 소사이어티' 에서의 바비(제시 아이젠버그 역)와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 역)는 불륜을 저지른다. 따라서 '라라랜드'의 헐리우드는 현실과 욕망 자체가 거세된 곳이며 '사랑'은 판타지하게 존재해야 하므로 존재의 흔적들은 '리알토' 극장 처럼 사라져야 하고, 미아가 성공 후 자신이 일했던 커피숍을 찾아가서 커피를 주문하는 것은 '성공'에 대한 끊임없는 재생산과 모방의 욕구로 가득찬 그야말로 '판타지한' 세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불쾌함과 찜찜함이 가시기 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4. 델로니어스 몽크
그나마 이 영화를 보고 좋았던 점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델로니어스 몽크를 상기시켰다는 점이다. 역시 언제 들어도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FRHJ9VZ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