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세 거장
클라우디오 메를로 지음, S.보니, L.R. 갈란테, 세르조 그림, 노성두 옮김, 사계절, 2003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세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생애와 작품들을 중심으로 기술한 책이다. 그들의 작품 제작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 과과정에 대한 삽화를 많이 삽입하였는데, 확실히 다른 비슷한 류의 책들보다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세 작가의 작품들을 이해하고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세 사람이 지나쳐 갔거나 동시에 머물렀던 곳은 피렌체와 로마인데, 이런 작가들을 알아보고 기용하고 예술 작품을 주문할 수 있는 재력과 능력이 있었던 '메디치' 가를 빼놓을 수 없으며, 이런 금전적 후원이 바탕되지 않았다면 이 세 작가는 그들의 출중한 능력을 예술혼으로 불태우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보여주고 싶었던 율리우스 2세 교황의 무한한 욕심 또한 이들의 작품을 한계에까지 끌어올리게 만들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다. 따라서 어찌보면 그들은 시대가 낳은 예술가일 수 있고, 그들이 시대를 만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술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곁다리에 불과했으며 더 좋은 세상, 더 발전된 세상을 위해 끊임없는 진리탐구를 하였고 그의 그런 탐구욕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은 그를 단순히 예술가가 아닌 '공학자'로 일컬어지게끔 하였다.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는 그를 '엔지니어'로의 가치로 인정하고 연금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두 거장이 그림만 그리며 편히 살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1506년 교황은 마켈란젤로를 고대 유적 관리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라오콘 군상 발굴 현장에 달려가기도 하고, 율리우스 2세의 묘지 기념물을 만드는 데 쓸 대리석을 얻기 위해 직접 카라라로 가기도 하였다. 또한, 라파엘로는 로마의 문화재 보존관리관으로 임명되어 고대 유적의 약탈과 파괴를 막고 훼손된 유적을 보수, 복원하는 일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이렇듯,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은 작품 활동에만 매진한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이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여 활동한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명이 총체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했던 중세 시대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으나, 내 생각은 그만큼 '예술'이 사회와 삶의 중심이었기에 가능했던 현상들인 것 같다. 즉, '예술'가들은 아직까지 '작업'을 해야하는 수공업자의 신분이었고, 이런 그들의 기능적 능력과 심미안적 안목이 결합되어 도시 설계, 건축, 장식,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만 중요하게 여겼다면 지배자들이 그들을 그렇게 애타게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지배자들은 세력의 힘, 권력의 힘을 '예술' 이라는 영역에서 보통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압도적인 작품들로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른바 현재 사회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더 웅장하고 높은 건물들의 경쟁, 자본가들의 경쟁적인 명화 수집 등은 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풍조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교양 서적인 만큼, 각 작가들의 사상 및 사회적 맥락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있다. 또한 흥미위주로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를 경쟁자로만 단순화시킨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왜 그렇게 크고 웅장하게 제작하였는지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도 생략되어 있다. 또한 격변하는 피렌체 상황(공화정, 군주제, 시민들의 봉기 등)에 대한 배경 설명이 빠져있어 피렌체 시절 작품들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읽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마 저자는 '르네상스의 세 거장'이라는 기본적인 개괄서를 통해 청소년들이 '미술'이라는 분야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다음 여정을 해나갈 수 있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샹보르 성, 앙부아즈에 도착한 레오나르도가 머물렀다던 근처의 작은 클루 성, 브라만테가 지은 고대 조각들을 전시하는 공간인 벨데레레 조각 공원, 라파엘로가 어릴 적 살았던 우르비노, 그 우르비노의 궁전 등은 나중에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