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sonatine97 2018. 6. 3. 14:06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갈라파고스, 2012





이 책은 페르낭 브로델이 1976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강연한 강연노트를 정리하고, 역자의 해제가 덧붙여져 있는 책이다. 브로델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3년 후, 이 시리즈를 완간하였다. 따라서 어떤 내용들은 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집필되기 전에 이루어졌기에 어찌보면 ‘집필계획서’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브로델은 역사를 기존에 존재하였던 여러 ‘이즘(ism)’ 을 탈피하여 본인이 직접 찾은 자료들만을 바탕으로 하나의 큰 건축물로 구축하였다. 따라서 브로델은 보이는 현상과 그 내재적 의미를 이해하는 구조주의적 설명 방식을 따르긴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개념들을 어떤 ‘주의(ism)’ 에 맞게 명료하게 서술하기 보다는 그때 그때 설명의 틀에서 각각 다르지만 일관성있게 기술하고 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사람에게 이 세상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어떤 특정 ‘주의’에 기인하지 않아 오히려 책은 쉽게 읽힐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방대한 시리즈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혜례본’ 인 점을 염두해둬야 한다.


브로델은 우리 역사의 구조를 ‘물질생활 -> 시장경제(일종의 경제생활) -> 자본주의’ 의 삼층으로 보고 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물질생활 영역에서는 ‘화폐’, ‘의상’, ‘사치품’  등을 언급하며 역사적으로 이런 물질의 의미들과 방식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언급하고 있다.

또한, 장기 지속하는 심층의 삶이 우리가 의식하기 어려운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인다고 하는데 이렇게 일상적 관행이 되어버린 ‘물질생활’이 ‘장기 지속’이라고 일컬었다.

즉 이런 심층의 역사는 인간의 조건을 결정하는 구조(내가 이해하기로는 사회 시스템, 공유된 문화 양식, 한 문화권에서 축적된 공동의 사고방식 등) 일 수도 있고, 이런 구조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동력의 구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해진 구조이기지만, 변할 수 있는 구조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프랑스혁명’ 같은 류의 혁명을 통해 기존 정치, 사회 지배 질서 등이 바뀌기도 하고, ‘69혁명’ 처럼 가치관, 문화 양식, 공동의 사유 방법 등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물질 생활’은 우리 역사 밑바탕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를 지탱하기도 하며 변화시킨다고 봤다.

런 물질 생활의 구조는 어느 한 순간 ‘짠’ 하고 변화는 게 아니라 서서히 우리 사회와 의식을 변화시킨다고 하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동시대인들에게 그게 큰 변혁의 시작인 ‘혁명’이라는 점을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이 ‘물질생활’은 의식하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재적인 심층의 구조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역자는 해제를 통해  장례를 치를 때 서양에서는 아주 오랜 세월 검은 옷을 입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흰옷을 입었다는 점을 예로 제시하였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는 장기지속하는 거듭된 기억으로 우리 역사의 튼튼한 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해외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고국땅을 그리워한다든지, 세계화로 인해 식생활이 변화되긴 하였어도 한식이 우리 음식의 주요 음식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우리에게는 내재된 ‘물질생활’에 대한 ‘장기기억’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물질 생활들을 바탕으로 ‘시장 경제’가 형성되었다. 당연히도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깨달은 인류는 ‘화폐’ 라는 것을 이용하게 되었고, 물물교환의 발전 형태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장도 다양한 측면으로 발전하였는데, ‘거대자본’이 투입되면서 일반 상인이나 평민들이 범접하기 힘든 규모의 상거래가 이루어지다.


브로델은 이 부분을 ‘자본주의’의 현상이라 여겼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공정한 자유 경쟁 시스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장의 손’ 이 아니라, 비열한 ‘독점’ 과 어마한 규모의 ‘자본’ 행태 속에서 이루어지는 괴물같은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괴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단순히 생산, 유통 등에서 이루어지는 독과점과 부의 독점때문이 아니라, 그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권력이나 국가 정부에 기생하여 ‘생존’ 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로델은 자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물질생활과 시장경제가 변해가는 추세에 맞추어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을 드로낼 것이다. 또 자본주의가 만들어갈 사회의 구조물도 그에 따라 변할 것이다. 그러니 자본주의는 그러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무언가사회 최상층의 존재가 아닌가”


즉 브로델은 ‘자본주의’가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시장 경제가 존재했던 14세기 15세기 에도 자본의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이끌어져 왔던 최상위 구조라고 주장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도 활용되고 있는 ‘환거래’, ‘어음’, ‘선물거래’ 등 자본주의의 최상층에만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 등은 그 당시에서도 이루어졌다.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거칠게 비난하진 않았지만, ‘히드라’처럼 자신의 존재를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변형된 형태로 그 ‘최상위층’ 구조에 굳건하게 버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분간 이런 브로델의 예언은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전 세계는 점점 더 ‘자본주의’의 맹아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런 ‘자본’ 중심의 사회 구조 또한 바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히드라’는 최상위층 구조를 공고히 하고자 다양한 영역, 사회질서, 문화, 정치 등과 기생하여 끊임없이 생존하고 있음을 오늘날 똑똑히 목도할 수 있다. ‘자본’이 결합되지 않은 그 분야를 찾기가 더 힘드니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며 ‘산업혁명’이 일어난 과정을 설명하는 게 흥미로웠다. 지리적, 정치적으로 이런 ‘산업혁명’을 통해 전파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현상이 그렇듯이 ‘결과’가 정해지면, 그에 대한 답이 찾아지는 법이다. 물론, 브로델의 설명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기에 ‘산업혁명이 왜 영국에?’ 라는 물음에 대한 여러 주장 들 중 하나로 보면 납득이 갈 수 있다. 다만 이런 명제들에 대한 해답은 극명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자. ‘왜 러시아에서 마르크스 혁명이 일어났나?’ 에 대한 설명도 한 두 가지로 그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대답이 수학의 공식처럼 명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