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Le Grand Livre La Géopolitique),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주)레디셋고, 2014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의 핵심은 서문과 결론에 다 적혀 있다. 특히 앙드레 말로와 저우언라이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대혁명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저우언라이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논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인이자 공산당원인 저우언라이가 서구 세계에 날린 냉소적이면서도 자만한 자의 답변일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프랑스 혁명을 논하기엔 아직 이른 시기일 수도 있다. 그만큼 역사는 유연하며, 한 가지의 큰 사건들은 다른 사건들을 야기하며 나비효과처럼 알 수 없는 파급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는 역동적이게 변화하였으며, 그 역동성과 긴박성의 흐름을 간과한 국가들이나 변화를 애써 무시한 국가들은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런 상황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각 나라의 지리적 위치 속에 겪게 되는 역동의 소용돌이, 즉 외교적인 문제, 사회 내부 정치적인 문제 들을 망라하고 있다. 대 전제로는 세계 외교의 패러다임 하에 놓인 각국의 상황을 지리적 요인들과 결부시켜 어떻게 진행하고 겪었는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정말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세계 다양한 나라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치 외교의 흐름이라든가 잘 알려지지 않은(특히 우리나라에)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을 위시한 제 3세계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런 정보들은 현재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 및 갈등의 요인을 대략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서술했듯이, 개괄적인 정보일 뿐 각국의 갈등 상황 등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정학 입문서”의 관점에서 기술되는 만큼, 이런 대략적인 정보만으로도 이 분야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 알다시피, 국가의 지리적 요인은 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인 전략,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파급력이 지대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각 국가들의 문제를 단순히 그 “국가” 자체로의 문제로 지엽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보다 거대한 국제적 흐름에 위치한 그 나라의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이해해야 하는 지점이 필요하다.
이 책은 국제 관계의 패러다임을 시대별로 위치시킨 다음, 연대 식으로 각 국의 정치적, 경제적 흐름 등을 설명하고 있다. 크게 냉전시대, 데탕트 시대, 양극화 이후의 세계 이렇게 큰 세 가지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냉전시대로는 크게 유럽의 냉전, 남반구의 냉전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냉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나토 조약, 바르사바 조약 등이 이루어진 배경, 당시 각 국의 이해관계 등이 서술되어 있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고등학교 때 세계사나 유럽사 등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야기들이라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남반구의 냉전이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각국들은 각자의 동맹을 택하거나 제 3의 길을 나아가거나 다양한 형식들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기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배에서 해방되거나 아니면 해방중이거나 아니면 해방을 꿈꾸던 시기였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더 신중하거나 더 분열되거나 둘 중 하나였던 시기였던 것이다. 거기다 종교의 색채까지 가미가 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강대국(냉전시대의 소련, 미국) 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고자 제 3세계의 나라들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 미소 양 국가는 막대한 군비 경쟁에 돌입하면서 서로 이런 식의 소모는 불필요하다는 암묵적 합의하에 ‘헬싱키 회담’으로 문서화하며 데탕트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미국의 패배, 헨리키신저의 레알 폴리틱 정책, 이란 왕조의 붕괴로 인한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등 일련의 사건 등을 겪으며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공화당의 레이건이 당선되고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군사 개입을 번번이 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 군사개입은 어떤 가치 수호나 정의의 문제가 아닌 단순히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미국에 이익이 부각되는 쪽으로 이루어진 야만적인 행태일 뿐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전복을 지원하여 피노체트가 군부 독재 정권을 수립(1973년)할 수 있게 한 것이나, 브라질의 주앙 골라르트 실각 지원 후 군사 독재정권 수립(1964년), 니카라과의 산다니스트와 전쟁을 벌인 콘트라스 반군 지원(1981-1988년) 등 개입 형태도 다양하고 개입 국가들도 한 두 나라가 아니다. 이러한 개입들은 현재까지도 남미의 국가들이 불안정한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계획경제의 신화를 자처했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제력은 사유 재산을 허용하는 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힘을 따라 잡을 수 없게 되었으며, 서서히 한 국가들씩 도미노처럼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몰락하게 된다.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이런 연쇄적인 몰락은 결국 이름만 강대국으로 남게 된 소련을 더욱 위태로운 처지로 만들게 되고,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우며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며 화합의 길로 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예상과 달리 서방국가들은 껍데기만 “소련”인 나라를 더 이상 인정하거나 경제적 원조를 해주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소련을 점차 붕괴시켰고 고르바초프는 더 이상 기존의 외교 정책도 답습하지 않았다. 문제는 과거처럼 다른 나라의 문제들에 있어서 “소련”이라는 국력에 의해 개입하고자 하는 정책도 폐기했다는 점이다. 물론, 방향성에 있어서 합리적이긴 하지만, 몇 십년간 “소련”의 그늘 하에 모든 갈등들을 봉합하며 지내왔던 제 3세계나 동유럽의 나라들은 드디어 자국의 문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냉전 시대 이후, 각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예언은 무참하게 빗나가기 시작했다. 코소보 전쟁을 필두로 각국의 민족 간의 대립, 종교 간의 대립, 부족 간의 대립 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그 끝도 기약할 수 없다. 한 국가의 갈등이 종식되었다고 보는 순간 또 다른 국가에서는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되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이런 각국의 갈등, 시위 현장 등에서 보여주는 이런 반목 현상들은 현대 국가의 기틀을 갖추기도 전에 미국, 소련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힘없는 국가들의 갈등이 이제야 분출된다고도 볼 수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리더를 자처하지만 자신들의 이권이 개입되어 있는 지역 또는 정치적으로 유리한 지역(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오히려 무력을 행사하며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중동 지역 및 아프리카 지역의 갈등 및 분쟁의 원인에는 상당부분 미국, 소련,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 의해 촉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제로 바뀌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주의 싸움이 더 올바른 현상인 듯싶다. 물론 이 책이 나왔던 2014년에는 중국이 지금처럼 존재감이 두드러진 않았을 수도 있고,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가시화 되지도 않았었을 것이며,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며 무역전쟁을 벌이지도 않았던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2019년의 상황은 미국, 중국 두 정상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로 인해 세계 주가가 요동치는 시점이다. 또한 중국은 냉전 이후 버려진 대륙인 아프리카에 적극 손을 내밀며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소련과 미국처럼 서로 등을 돌린채 군비경쟁을 하면서 관계도 맺지 않은 양극화 시대는 아니고, 서로의 교역과 교류도 활발하지만 서로 적대시 한다는 상당히 복잡 미묘한 관계인 것이다. 여태껏,1945년 이후 세계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적과 우방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지배하는 시대였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적과 우방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각국들은 보다 “실리”를 찾는 ‘뉴 레알 폴리틱’ 정책과 ‘자국 우선주의’를 먼저 외치고 있다. 마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대, 즉 민족주의의 대두와 국가의 부를 우선시 했던 과거의 모습들과도 상당부분 겹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도 결론에서 언급했듯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항하며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고 모두의 의식주가 보장된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게 핵심 과제인 것이다. 물론 저자도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했다....’ 하면서 개탄스러워 하는 게 느껴진다. 과연 미래는 이런 희망찬 모습들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늘 그래왔듯이 전쟁의 위협(인류 대부분의 시간동안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생존을 위해 고민하였다),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얼음을 걸으며 살아가게 될 것인가?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혹은 여타의 지정학 책들을 읽고 나면 국제 뉴스에서 보도된 사실 이면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