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ouder than bombs

sonatine97 2016. 10. 30. 01:34

https://www.youtube.com/watch?v=4I1l_J9QuVk

http://www.imdb.com/title/tt2217859/?ref_=nv_sr_1


(개인적인 리뷰이며 스포일러 다수 포함)

이 이야기는 크게 몇 가지의 내러티브로 읽을 수 있는데 1) 가족 중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이 남은 가족 구성원들과 죽은 자와의 관계, 상흔들에 대한 이야기 2) 누군가 에 대한 기억이 과연 그게 진실일 수 있는가? 3) 엄마에 대한 기억의 잔상, 관계의 잔상을 극복하는 오이디프스의 성장기 4) '전쟁'이라는 비극적 참상과 일상 생활이라는 '가족' 사이의 간극에 대한 갈등 이야기 등으로 나뉠 수 있다.


1) 가족 들 중 누군가 가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주하게 되면 남은 가족들은 그 일에 대해 암시적 함묵을 하며 각자 남은 잔상들을 힘겹게 껴안고 살아간다. 따라서 죽은 자는 남겨진 자들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로 존재하게 되며 그 이미지들은 파편화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삭제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게 콘레드의 공상 씬, 조나의 파일 삭제 씬이다. 특히 콘레드의 공상 씬은 올해 본 가장 훌륭한 미장센이었다. 유리 조각의 파편들은 파편화된 죽은 자에 대한 이미지.


2) “진실이 뭔가요?” 라는 조나의 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단지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인 것이다. 동료 사진 작가가 쓰는 추도 기사는 그 사람이 기억하는 모습인 것이지 그게 그 인물에 대한 진실은 아니다. 사람은 수많은 면을 지니고 있고,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든 면이 아닌 극히 제한적인 측면만의 모습으로 관계 맺음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관계 맺음의 파편화된 조각들을 모을 때 비로소 진정한 한 인간의 면 면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콘레드는 조나에게 별 볼일 없는 아이 인줄 알았는데 이런 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또한 멜라니에게 '선생에게 침 뱉는 아이' 에서 '착한 아이' 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진실이란 알 수 없는 것이고,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사실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너희 어머니 괜찮아보였어.”라는 말에 “근데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3) 콘레드에게 멜라니는 엄마와 동일시할 수 있는 여성의 상징이다. 멜라니가 흰 옷을 입고 누워있는 꿈을 꿀 때 이를 깨우는 건 엄마의 목소리. 멜라니를 카페에서 보고,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엄마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아빠는 그저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게임 속 캐릭터처럼). 아빠의 남근은 힘이 없이 무력하고(이자벨의 꿈, 성관계 실패에 대한 이야기 등), 집에서 가정을 돌보는 사람('아빠가 이런 음식을 먹게 하다니', '난 연기를 포기했어' 등) 으로 묘사되고 있다. '전쟁터'에서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건 엄마의 몫이며 힘없는 아빠의 남근과 대조적으로 성적인 강함을 묘사하기 위해 외도라는 장치(사랑이 아닌 작업할 때만 관계를 맺었음을 암시)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가정에서 소년들의 롤 모델은 동성인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인 셈이다('조나는 엄마를 닮아 똑똑해'). 또한 조나는 아내인 '에이미'가 언제 떠나갈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아빠인 진은 '이자벨(아내)을 믿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하며 콘레드는 짝사랑 소녀(멜라니)가 점심 같이 먹자고 제안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여성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결국 극복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항상 떠남이 일상이 되어버리다가 결국 자살로 마감했던 엄마와의 관계맺음, 즉 엄마와의 상실, 여성과의 상실인 것이다.


4) 다음은 이자벨의 이야기. 이자벨의 이야기는 내레이션과 가족들이 기억하는 잔상 속에서 펼쳐지는데 일단 종군 카메라 기자로서의 어려운 점, 트라우마 등이 언급된다. 사실 뭐 이런 부분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들어온 레파토리라 자칫 진부하게 들리지만 깔끔하고 감각적인 이미지(특히나 폭탄 씬) 들로 채워지기에 그 세련미는 더욱 빛이 났다. 또한, 그 무미건조하고 지친 표정, 무력감,우울, 좌절 등을 그 눈빛 만으로 표현해낸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 또한 이 내러티브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삶과, 세상의 비극을 껴안고 이를 다시 세상에 알리는 지극히 '사회'적인 삶과의 괴리, 갈등 속에서 느끼는 번민 등이 매우 간결하게 표현되었기에 이자벨의 이야기로 이 전체 서사를 완성 시킬 수 있었다.

이 네 가지의 모든 측면들의 네러티브가 하나로 이루어져 다시 큰 내러티브와 미장센을 이루어내는 연출력이 꽤 돋보인 작품이었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작품은 처음 봤는데 꽤 괜찮았다. 어떤 이들은 스타일만 신경쓴다고 비난하기도 하였지만 맥락없는 스타일이 아닌 하나의 미장센 완성의 과정이기에 감탄스럽기만 하였다.또 콘래드를 연기한 데빈 드루이드의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제시 아이젠버그야 제시 아이젠버그이니까.

*가족 중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본 이들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극히 촌스럽고 진부하지 않게 세련된 방식으로 연출하였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