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 저,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14
샐린저의 유일무이한 유명작품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작가가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자, 셀린저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홀든(Holden : 이름에도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처럼 은둔자가 되어 죽을 때 까지 수 십 년 간 살았다.
홀든은 여기저기 사립학교에서 퇴학당하며 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냉철한 눈과 상위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위선, 가식, 제도적 허울에 환멸을 느끼며 3일간 뉴욕을 방황하며 보낸다. 그게 이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성세대 = 저항해야 할 세대, 어린이 = 순수함 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그 세심한 묘사 덕분인지 이런 이분법적 시각에 커다란 저항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건 홀든이 비판하고 환멸을 느끼는 기성세대가 화이트 칼라로 대변되는 부유층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개인적 저항감과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는 “위대한 개츠비”와 맥락을 같이 하는 지점이라 당연하듯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홀든의 동생인 피비로 대변되는 어린이 계층에 대한 순수성에 대해서는 너무 극단적인 접근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어린이 계층이 기성세대보다야 순수할 수 있지만, 그 ‘순수’ 함이 모든 것을 옳다는 뜻은 아니기에 이런 이분법적 접근 방식이 이 소설의 묘미를 떨어뜨리는 지점이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의 핵심은 양 계층의 대칭점을 통해 홀든이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자 하는 또 다른 ‘순수성’에 기인하는 것이기에, 이 이분법적 시각은 이 소설의 핵심이자 주제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의 배치라 여겨진다. 만약, 이런 어린이 계층에 대한 동경이 없다면 그저 불평 불만 많은 퇴학당한 퇴폐적인 남고생의 투덜거림 밖에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동생인 엘리, 피비에 대한 애처로움과 경이로움은 이 소설이 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해준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홀든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홀든 주변의 성인들은 끊임없이 홀든의 미래에 대해 채근하고 다짐을 받으려 한다. 물론, 홀든은 그런 성인들에게 직접적인 대항은 하지 않지만, 무척이나 견디기 힘들어 한다. 아니면, 홀든 스스로도 정말 시골 오두막집에서 사는 게 계획의 전부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언정, 본인의 결정에 본인이 책임을 지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어느 대학에 가야 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 등 조언은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조언도 조언을 원치 않은 아이들에게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인생에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 누구나 부딪히고 좌절하고 겪으면서 배워간다. 이런 배움이 꼭 기성세대의 조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성세대의 조언을 터부시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홀든이 정말 선생들이나 아버지 생각대로 이도저도 아닌 인생을 살면서, 모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술이나 퍼마시는 소위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루저 인생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홀든의 인생을 누군가가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든은 피비에겐 아마도 소중한 존재일테며, 그를 아껴주는 돈 많은 가족들이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든 같은 처지에조차 놓여지지 않은 젊은이들이 이 세상엔 훨씬 더 많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고, 대학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가고 어쩔 수 없이 일용직일을 하며 인생이나 세상을 탓하며 술이나 퍼마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젊은이들이 더 심각한 것이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진정한 기성세대의 몫이며, 사회와 정치의 과제인 것이다.
홀든은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진심으로 홀든이 이 영민한 가치관과 식견으로 대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이 사회의 불안정성을 조금이나마 고치려는 훌륭한 기성세대로 성장하길 응원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계급의 위선, 속물, 잘난 척 등을 비판하는 청소년이야 말로 얼마나 영리하고 멋진 젊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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